박근혜 대통령 당시 흔히 ‘유신체제’라는 키워드로 한국정치 체제나 한국사회의 경직성을 분석하는 글들이 많았는데, 탄핵집회 이후 이 시대가 종결됐다는 자축과 함께 유신체제라는 말이 쏙 들어간 것 같다. 개발과 발전이 아니고도 더 좋은 미래를 열 수 있다는 기대는 없는 것 같은데, 무엇이 대체했는지도 모른 채 우리의 시간만 흐른다. 구체제가 몰락한 이후 단기간에 안정화된 신체제의 모습을 보는 건 어렵지만, 그 체제가 보여줄 수 있는 미래는 유신체제보다 더 빛날 수 있을까? 출간된 지 5년이 다 된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건, 이 책이 신간이었던 2016년에는 뭐가 오든 한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시대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한국 근대는 만주국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만주연구자였던 한석정은 한국의 근대화를 급속도로 이룬 ‘유신체제’(또는 저자의 언어대로라면 1960년대 재건체제)의 기원은 만주라고 주장하며, 이는 곧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단절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재건체제에서 발견되는 직진성과 속도, 전통과의 단절, 위생, 신체 등 만주국과 유사한 근대화의 특질이다. 이러한 유사성을 가장 강력하게 이어주는 근거는 유신체제를 만든 인물들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성장한 A급 엘리트들이 아니라 만주국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B급 엘리트들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근대화는 이런 방식으로밖에 이뤄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근대화 속도는 너무 빨랐다. 대학시절 쫓아다니던 교수님의 강연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와 자신은 한강에 대한 추억이 너무 다른데, 해외에 나가니 아버지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에게 낚시 배운 곳에서 자신이 낚시 배운 추억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더라고. 수치적으로 이야기해도 한국은 세계 12위의 GDP를 가진 부유한 국가이지만, 인구도 국토도 자원도 불리한 조건에서 60년만에 이룬 것이란 걸 기억해야 한다. 경제적 근대화의 측면에서 한국의 경제성장에 관해 잠깐 첨언하면, 한국의 유래 없는 높은 성장률에 핵심적인 요인은 높은 교육수준이다. 다른 말로 풀어내자면 인적자원이 그 속도를 감내했고 이는 우리의 멘탈리티에 새겨있다는 의미다
물론, 대안은 없다. 단지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한국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 근원을 이야기하는 또 한 권의 책일 뿐이다. 만주에서 근대가 왔다는 주장은 출간 시점이 절묘했고 사회 변혁의 분위기가 다시 타오르는 시점에 한국 사회의 근대성을 재검토하자는 취지에서 여러 논자들에 의해 지지와 반박이 이뤄져 왔다. 정책문화와 인적 구성이 만주에서 왔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만주에서 학습한 것을 동일하게 해방한국에서도 쓸 수밖에 없던 조건이 무엇이었는지에 관해 다각도로 다시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이나, 다른 면에서 극단적인 직진성이 가져온 근대화의 피로감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도 좀 더 종합적으로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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