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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s

김문겸∙이일래∙인태정, <여가의 시대>: 여가가 주는 해방감

by 양자역학이 좋아 2021. 9. 24.

쉴 때 뭐해요?’

작년 요맘때 직장 선배들이 이 질문을 할 때,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맸던 기억이 난다. 내 취미는 책 읽기인데 공대 다닐 때도 책을 끼고 살던 나는 별종이었기에, 뭔가 다른 답을 해야만 했는데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24시간 중 대부분을 일 하기 위해 쓰거나,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일 하는데 쓰는데 그게 왜 중요하다고 느껴야 하나 싶었다.

회사에 출근한지 만 1년이 가까스로 지난 지금에야, 왜 쉴 때 뭐하는지가 정말 소중하다고 느낀다. 회사 일로 어떤 계획도 미리 할 수 없었던 기간이 지나고 나니, 다시는 그런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아졌다. 아침엔 달리고, 틈틈이 책 읽고, 2외국어 공부하고, 근무시간만 딱 채우고 헬스장으로 뛰어갈 때 묘하게 더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학시절 세미나에서 열렬히 비판했던 게리 베커의 노동과 레저 간의 선택이라는 이론이 정말 선택가능하길 간절히 빌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문겸, 이일래, 인태정이 쓴 <여가의 시대>는 우리의 여가 생활을 성찰할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다. 여가문화의 발달사, 공휴일, 관광, 축구, 마라톤, 술집과 유흥, 키덜트 등 우리가 쉴 때 하는 일들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분석한다.

특히나 인간은 노동하거나 (심지어 여가시간이나 자는 시간도) 재생산을 위해 사용한다는 전제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을 통해 여가 시간이 갖는 가치를 좀 더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중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일 하기 위해 태어나, 일 하기 위해 살다, 일 하다가 죽는다. 이는 낙관할 필요도 비관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여가가 개인에게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여가 사회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다룬 프롤로그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여가는 스스로가 없어지는 경험을 하는 직장생활에서 잠깐 나와 자아실현하고 좀 더 살만하다고 느끼게 만들어주는 수단이다. 근본적인 해결은 노동에서 자아실현이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여가에서 이를 충족시켜주는 것은 임시방편이래도 택할 수 밖에 없다.

 

지배계급의 여가문화가 전체 사회의 주체성을 변형시키는 방식을 분석한 축구나, 전시되는 주체성과 상반되어 나타나는 밤문화인 술집과 유흥문화에 대한 분석도 나름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나처럼 오래달리기를 즐긴다면 마라톤 여가에 좀 더 공감을 많이 할 것이다.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혼자 할 수 있는 여가만 찾는다면 역시 달리기만한 게 없다.

좀 더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가 기대했던 신자유주의와 경제학제국주의의 전범인 게리 베커의 인적자본론에 대한 깊은 비판적 분석이 없었다는 것이다. 게리 베커는 노동 1단위시간과 레저 1단위시간에서 오는 효용 간의 계산을 통해 어떤 ‘equilibrium’에 도달할 수 있고, 여기에서 노동과 레저 간의 시간배분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을 사랑, 결혼 등 인간 삶의 대부분의 영역에 확장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사실 저자들은 게리 베커의 설명을 따르는 것은 조심스레 피하면서도, 한국 여가 문화를 물적 변화와 함께 설명하긴 했으나 게리 베커을 인용해 그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없었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결국 원인이 같은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임금률은 올리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계급투쟁과 주어진 임금률에 대해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을 배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고 인간은 결코 그런 계산적 합리성만으로 움직이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

 

물론, 내 삶에 있어 노동은 중요하고, 나아가 나는 여가 이상으로 스스로를 찾을 수 있는 노동을 하고 싶다. 그렇지만 회사 밖에서의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이 제약되는 요즈음, 이 책만큼 위로가 되는 책도 없는 것 같다. 여가가 노동해방을 대신할 순 없지만, 적어도 여가시간에서 노동시간에서의 해방감은 가져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