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상업적으로도 실패하고, 영화 그 자체의 재미로서도 실패하는데도 의미가 있는 영화가 있다. 오래 전에 봤던 <블링 링>도 사실 꽤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다른 영화 리뷰를 쓰다 짧게 남긴다.

2015년 겨울이었을까? 병역 복무 중이던 친구와 휴가를 맞춰서 나와 유명 예술 평론가인 교수님과 함께하는 영화 감상회에서 <블링 링>을 본 적이 있다. 소피아 코폴라가 감독하고 엠마 왓슨이 출연하는 영화로, 미국 청소년들이 할리우드 스타 집에서 ‘장난 삼아’ 각종 명품을 훔치고 SNS에 자랑하고 결국은 잡혀서 처벌받는 후일담을 담았다. 줄거리만 들어도 할리우드의 하이틴 영화적 상상력의 빈약함이 느껴지고, 왜 선생님이 이 영화를 보자고 하신 걸까 고민도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 영화는 실화다. 실화여서 문제작이다. 그 어떤 도덕적 정당화도 또 도둑질에 대한 어떠한 뉘우침도 찾아볼 수 없는 도무지 정당화가 안 되는 이야기다. 이들은 물론 모두 처벌을 받았다. 전근대인이라면 남의 것을 훔쳤으니 손을 잘라서 값을 치러야 했겠지만, 근대 형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통적으로 뉘우침 아닌가. 넷플릭스에는 실화의 다큐멘터리도 있다.

우린 도대체 이 광경을 보고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이미 한참 전에 파산선고를 받은 도덕의 상실 담론을 꺼내려는 것이 아니다. 80년대 이후 주로 보수주의자들은 엄벌주의를 통해 시민윤리와 도덕을 다시 세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철저히 실패했고 남은 건 전세계 교도소가 가득 차서 가석방 없이는 사법 시스템이 붕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저소득층이라면 박탈감으로 설명할 수 있어도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도 아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의 무게가 더 컸다. 10년 전쯤에도 여기에서 생각이 멈췄는데, 사회지도층의 위법은 차치하고 그들의 너무나 당혹스러운 뻔뻔함을 보고 있자면, 우리는 도대체 이 정당성 없는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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