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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s

<가타카>: 디스토피아에서의 연대

by 양자역학이 좋아 2021. 8. 10.

<가타카> 포스터. 에단 호크 영화는 대체로 다 의미도 있고 좋다.

오랜만에 <가타카>를 한 번 더 봤다. 인간의지를 다룬 영화라는 생각 때문에 내 인생영화 중 한 편이지만 주인공을 에단 호크가 분한 빈센트가 아닌 주드로가 분한 빈센트라는 시각에서 보니 디스토피아에서의 연대에 관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내가 봤던 <가타카>는 인간 의지에 관한 영화였다. 주인공 빈센트는 죽을 운명을 갖고 태어나 우주비행사의 꿈 꾸는 것은 사치였지만, 노력 끝에 결국 해낸다. 자신의 운명을 버림으로써 역경을 이겨내는, 디스토피아 속에서 어떻게든 우주탐사를 보내는 가타카에 들어가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서사로만 봤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동생 안톤과의 수영시합이다. 그는 어렸을 때 그의 동생과의 수영시합에서 이기면서 자신의 꿈을 꿔도 괜찮다고 믿고 가타카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한 번 벌이는 수영시합도 그렇다. 특히나 이전에는 어렸을 때 내가 영화 결말을 잘못 기억하고 있어서, 마지막에 그가 수영시합에서 동생 안톤에게 지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그런 디스토피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투지가 비장미를 발하는 영화로 기억했다.

그런데 사실 그가 디스토피아에서 벗어날 수 있던 건, 아니 그가 디스토피아에서 자기가 꿈꾸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그와 다른 방향으로 '디스토피아'에서 사는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 덕이었다. 그에게 신체 샘플을 제공한 제롬은 육상대회에서 2등을 기록할 정도로 신체능력이 우수했지만, 교통사고를 당해 더 이상 뛸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는 계속 자신이 '2등'이었던 과거를 자랑스러워하며 자신의 우월한 유전자를 과시한다.

제롬이 자랑스러워하는 '2등'은 빈센트와 연대할 수 밖에 없던 이유다. 2등은 제롬이 꿈꿨던 "1등"이 아니다. 그는 단지 빈센트가 고통을 참아가며 자신의 꿈을 위해 수술을 참는 것 때문에 빈센트를 도운 게 아니다.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그는 더 이상 1등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이름을 빛나게 하는데 그도 제롬이 필요했다. 그것이 그가 담배도 참고 전력을 다해 제롬을 도왔던 이유였을 테다.

물론 제롬이 끝까지 열등감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니다. 제롬이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1층에서 꾸역꾸역 기어 올라오는 장면의 간절함은 단순 동정이 아님이 느껴진다. 제롬이 우주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그가 평생 쓸 신체 샘플을 제공하고 소각로에서 은메달과 함께 생을 마감하는 것은, 제롬이란 이름으로 빈센트가 타이탄 탐사에 나서는 것이 곧 빈센트의 꿈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영화 마지막이 타이탄으로 가는 빈센트의 설레임이 아니라 제롬의 독백으로 끝나는 것도 빈센트 뿐만 아니라 제롬에게도 무게가 실려있다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빈센트는 제롬의 연대 없이 제롬이 될 수 없었고 제롬은 빈센트 없이 제롬으로 가타카에 갈 수 없었다. 제롬의 마음이 비록 순수한 것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제롬이 빈센트를 돕는 것은 열등감과 우월감이 뒤섞인 감정에서 비롯 됐지만, 디스토피아에서 친구가 된 이의 욕망를 욕망하는 연대로의 이행이야 말로 이 영화가 빛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