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일은 절대 못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직장인이라면 전통적인 의미에서 자기계발에 힘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자산이 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능력을 인정받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왕 내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과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아 붓는 곳이 직장이기에, 그곳에서 일을 잘하기 위해 내 삶의 일부를 더 할애하는 일은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 내 또래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전통적인 의미의 기업에 종속된 자아로서의 ‘자기계발’을 싫어한다. 회사에서의 성공이 삶에서의 성공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재테크와 운동, 더 나아가면 독서 같은 우아한 취미생활을 긍정적인 의미의 자기계발로 생각한다. 열정의 이미지는 이제 야근이 아닌 회사 밖에서 회사와 무관한 자기계발 활동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활동으로 바뀌었고, 뜻밖에도 신자유주의의 첨병이라고 할만한 시카고 학파의 거두 게리 베커의 이론이 우리에게 내재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노동과 레저의 편익과 비용을 계산해서 노동시간과 레저를 결정하는 인간상.
자기계발은 이처럼 세상에서 없어진 것 같지만,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과거에는 체제 그 자체에 노골적으로 복무했다면, 지금은 더 개인을 위로하고 긍정하는 형식으로 변하여 존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IMF 직후에는 부자를 긍정적으로 그리기 시작하고,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자리잡는 시기에는 근면의 절정에 서있는 인간상을 조명했다. 그리고 그러한 자기계발서들에 대한 비판서들이 나올 무렵에는 이제 자기계발서는 종교 서적으로 변해왔다. 이제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는 신화에서, 믿으면 성공한다는 신화와 망해도 괜찮다며 내려놔도 괜찮다고 다독이는 구세주로서 기능하기 시작했다.
자기계발서는 점점 더 개인화되고, 또 성공이 아닌 생존을 효율적으로 보조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쩌면 그 첨단에는 MBTI와 같은 성격유형검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움 받을 용기』를 넘어서 이제는 MBTI별 특징으로 스스로를 이해한다. 과거에 우리는 책을 읽고 고민하거나 경험을 하면서 스스로를 이해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한 성찰이 아닌 16가지 유형으로 사람을 나누어 분석한다. 인간관계 Skill이라기보다는 사실, 스스로에 대한 탐구도 대신 해주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DISC나 MBTI가 기업에서 인간형을 분류하고 배치하는 인사도구로 개발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말해주는 건 기업화된 자아가 아니라, 나는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이해에도 노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간편한 방법이 지지 받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회사 동기가 추천해준 심리학 서적은 아마 안 읽게 될 것이다. 나도 마음이 아플 때면 그런 책들을 보긴 하지만 그 친구나 나나 사실은 자기계발적 주체화가 잘 된 사람들이긴 하다. 그래서 나는 나나 너나 그냥 좀 스스로에 대한 가혹한 평가를 내려 놓아야,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도 좀 내려놓을 수 있지 않겠냐고 했지만 그게 어디 쉬울까?
군데군데 좀 비약적이다 싶은 분석도 없진 않았지만, ‘자기계발’이란 것이 얼마나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바꾸어 살아남아왔는지 짚어주는 책이다. 특히나 나 같은 90년대 초반에 태어난 친구들은 이 책에 나오는 책들을 대부분 읽어봤을 것이기에 공감이 많이 갈 것이다. 한 때 강준만 선생이 자기계발서는 소수의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나머지의 불행을 혹독하게 비판하기에 문제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를 뒤집어서 여전히 자기계발서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자기계발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자기계발서 읽을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게 좀 더 도움이 되고, 자기계발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계발서를 통해 허구의 위안을 얻는다.
그렇기에 자기계발서의 본질적인 가치인 위안을 넘어서 연대로 가야 하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지만, 나는 오히려 현재의 위안도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크릿』과 같이 믿으면 믿는대로 돌아온다는 공상을 믿지 않을 만큼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그렇다고 굳이 모두가 『아침형 인간』으로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단지 나도 성실히 살면 잘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고, 안 해도 패배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 것만으로도 더 우리 삶이 행복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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