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adings

미타니 타이치로,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 19세기에서 마주친 현대 일본

by 양자역학이 좋아 2021. 11. 2.

<바람의 검심: 더 비기닝>, 4부작 OVA 추억편만 봤다. 전체적인 바람의 검심의 전체적인 서사는 근대화의 이상에 대한 순수한 추구와 그 이후 성찰이 주된 내용이다. 4부작 OVA의 어두운 분위기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좋았다.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바람의 검심>을 보다 문득 메이지 유신이 궁금해 관련 책들을 몇 권 읽었다. 박훈 교수의 <메이지 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읽고, 미타니 타이치로가 쓴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를 읽었다. 박훈 교수가 쓴 앞의 두 책이 메이지 유신까지의 혁명서사라면 이번에 읽은 책은 미타니 타이치로의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는 혁명서사도 근대화론으로 묶어서 일본 근대를 총체적으로 조망하고자 한다.

메이지 유신이 왜 어떻게 가능했는지도 물론 중요한 문제다. 박훈 교수가 말하듯 당시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다. 조선은 열등했다기보다는 평범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조선이 아니라 일본이 특이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어떻게 근대화를 할 수 있었는지 중요하다.

간단히 메이지 유신이 가능했던 조건에 대해 서술하자면,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세력권에서 벗어나 있었고, 사회문화적으로는 평화로운 도쿠가와 치세에서 기술경제적 성장이 일어났고, 이에 반해 빈곤해진 하급 사무라이들이 불만을 품었다. 더욱이 국제 관계상 완충지대로서 역할이 필요해 식민화 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마 주된 주장일 테고, 박훈 교수의 경우에는 공론장의 형성 측면에서 유학이 융성해진 환경을 중요하게 바라본다.

그런데 메이지 유신의 조건들의 분석에 길을 잃는다면, 구체적인 근대의 모습에 관한 질문은 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미타니 타이치로의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는 혁명서사가 아닌 일본의 근대성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단초가 되어준다. 물론 어투와 달리 만만한 책은 아니다. 책을 펴면 경어체로 쓰여있어 강연을 옮긴 책 아닐까 생각했다. 분명 가볍게 읽기 좋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냥 경어체였지 쉬운 책은 아니었다.

저자 미타니 타이치로는 일본의 원로 정치학자(법대 교수이긴 하다), 메이지 유신이 불러온 일본 근대를 총체적으로 조망한다는 목표 아래 비지호트의 근대화론을 빌려 일본의 정당정치(토의에 의한 통치), 무역(자본주의), 식민지화(제국주의)를 분석하고 추가적으로 천황제의 의미를 묻는다. 바지호트에 따르면 정치적 근대의 핵심은 토의에 의한 통치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전통과의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주의적 전통에 의해 가능했다. 한편, 근대로의 이행에서의 핵심인 관습의 지배를 변혁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역과 식민지화였다.

일본제국은 과거 짧은 기간(1924~1932) 동안 입헌 정당정치가 이뤄졌으나 붕괴했다. 그런데 어떻게 정당정치가 가능했을까? 막번 체제에서는 합의제와 같은 상호 억제균형 메커니즘이 발달해있었고 명목적 권력과 실질적 권력이 분리되어 있었다. 이에 더해 상호감시기능이 작동했다. 이에 더해 학술 공동체에 의해 형성된 문예적 공공성으로부터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하는 정치적 공공성이 형성됐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대정봉환 이후 입법권과 행정권을 구별해 비막번 세력을 입법권에 가둬놓으려는 정략도 한 몫 했다. 메이지 헌법의 제정자들은 의회제를 헌법제도로 삼았으나, 유신혁명의 이념인 왕정복고에 따라 패자를 배척해야만 했기에 엄격한 권력분립을 통해 의회가 패부가 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이러한 분권주의적 접근은 최종적으로 권력을 통합하는 제도적 주체를 결여했기에 체제의 안정성 확보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처음엔 번벌이 그역할을 담당했으나, 폐번치현 이후 번은 사라지고 번벌은 정당이 되면서 막부적 존재가 됐다. 그것이 정당정치가 가능했던 이유다.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과 자립적 자본주의의 형성은 불가분한 일체다. 메이지 지식인들은 스펜서의 군사형 사회에서 산업형 사회로의 이행이라는 사회발전 도식을 모델로 삼았다. 일본에서는 스펜서의 이론과 달리 민간이 아닌 국가 주도로 자본주의가 형성됐다. 유럽 열강으로부터의 불평등조약 하에서는 외자에 의존하지 않는 자본주의를 성립시켜야 했다. 오쿠보가 유신 이후 이와쿠라 사절단을 다녀온 후 식산흥업의 자본주의가 시작됐다. 그는 관영사업으로 상징되는 국가의 산업기술 도입, 지조를 비롯한 세입제도 개혁을 통한 재정 안정화, 양질의 노동력 산출을 위한 공교육 확립, 비생산적인 대외전쟁 회피로 안정적인 자본축적을 이끌었다. 오쿠보 사후에는 비외채와 적극적 산업화라는 두 가지 노선의 갈등이 본격화된다. 청일전쟁 이후 마츠카타는 외자 도입을 시작했다. 동시에 이 시기에 일본은 신용확보를 위해 금본위제를 지탱하기 위해 긴축을 지향했다. 그러나 1차대전 이후 세계공황으로 금본위제는 붕괴됐고, 국가자본 및 경제 내셔널리즘이 대두했다. 그러면서 공공사업비 확대, 적극적 지출 통한 수출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정부주도 경제정책으로 회귀했고, 이후 전쟁체제에 종속된 자본주의로 이행했다.

근대의 부정적인 다른 특징은 '제국주의', 즉 식민제국화다. 식민지 제국이란 법의 지배로부터 소외된 영토를 포함한 국가를 말한다. 일본은 자유무역 제국주의를 바탕에 둔 경제적 식민지가 아닌 군사력에 바탕을 둔 식민지 영유를 우선시 했는데, 이는 식민화의 동기가 경제적 이익이 아닌 군사적 안전보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메이지 유신의 전개 과정에서 요시다 쇼인 등 선구자들도 주장하던 바였다. 일본의 주요식민지는 대만과 한국이었다. 이들 국가에는 군관출신 총독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제국대학도 설립하는 등 동화 정책도 활발히 펼쳐왔다. 1차대전 이후 일본이 국제연맹을 탈퇴한 이후로, 일본의 식민화 이데올로기는 범유럽주의에서 따온 지역주의였다. 동아신질서를 주장하였으나, 군사력에 의해 선도된 정치경제적 의미의 지역주의로 문화적인 의미는 없었다. 패전 이후 냉전기에는 미국에 의해 수직적 국제분업 시스템이 세워지고 일본의 위상도 미국에 의해 정해졌다.

일본 근대는 명확한 의도와 계획을 갖고 수행된 전례 없는 역사형성의 결과다. 목표는 확고했지만, 도달할 방법은 막연했다. 따라서 일본은 유럽에 대한 이미지를 가져야만 했고, 메이지 유신의 선구자들은 유럽의 역사적 실체성을 사상하여 조작가능한 기능체계로 인식했다. 기독교도 국가의 기축으로 이식해야 할 기능이었고, 그에 대한 등가물로서 천황제가 도입된다. 천황은 교육칙어 공표에서 보이듯 도덕의 입법자로서의 역할을 했고, 패전 이후에는 주권자의 자리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이어지는 종장에서 논의를 종합하면서 저자는 일본 근대성이 도달한 곳을 관망한다. 그는 과거의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끊임없이 현재 일본 사회를 겨냥한다. 일본은 정치적으로 굉장히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고, 내각제를 취하고 있지만 정당제라기보다는 엘리트에 의한 통치로 나아가고 있다. 일본 자본주의는 근대화 시기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보증에 엄청난 규모의 국채발행에 의존한 경기부양책을 쓰고 있지만 오랜 침체기로 위기를 맞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고, 군대가 없어도 동아시아에서의 한 일 갈등은 여전하고 나아갈 길이 멀다. .

일본 근대화 과정이 궁금하다면 이만한 책이 또 있을까 싶다. 노학자의 노년기 학문은 정치경제적 근대화 과정을 총론적으로 다루면서도, 논점이 부각되는 주제는 자세히 다뤘다. 더욱이 근대성 성찰에서 가장 중요한, 근대성 탐구의 현재적 의의도 충분히 논의된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다. 다만, 앞에서도 지적했듯 바지호트의 이론에 일본 근대성의 요소들을 끼워서 이야기하지는 않았나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