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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s

서동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계보학

by 양자역학이 좋아 2021. 11. 22.

소위, '커리큘럼'이 남아있던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아니 형, 누나들)은 다 읽었던 책. 출간된지 10년도 넘은 책이지만, 내용도 여전히 유효하고 표지도 세련됐다.

취업 준비생 시절, 내 하루 일과는 아주 단순했다. 10시쯤 느지막히 일어나서, 새로 뜬 채용공고를 찾아보고, 괜찮은 회사가 보이면(아니, 신소재공학 전공자만 뽑는다고 하면) 자기소개서를 썼다. 작성한 자기소개서는 취업스터디 친구들과 함께 서로 돌려보며 피드백을 하였고, 인적성 검사를 함께 준비했다. 시즌이 끝날 때쯤에는 면접 스터디를 하였고, 다 떨어지고 나면 왜 떨어졌을까자책을 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취업준비 이전엔 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오히려 취업준비를 하면서 여기 말곤 나를 받아줄 곳이 없구나느꼈고, 역시나 이력서를 낸 50, 면접 20번을 통해 결국 붙은 곳은 여기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들이 아마 나를 나름 성실한 회사원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2009년에 초판이 발행된 책이지만, 아직 이 책의 새로운 자본주의에서 빚어내는 주체성에 관한 논의는 유효하고, 또 일상 속에서 비판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껴 리뷰를 남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의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형성과정을 분석하기 위해 세 가지 주체의 면면을 검토한다. 첫째, 국가가 주체화하는 인적자본’, 둘째, 자본이 주체화하는 유연한 노동’, 마지막으로 문화가 주체화한 ‘자기계발하는 개인이다. 이 세 과정은 모두 신자유주의 시대의 형성과 함께 이뤄졌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한국사회에 수용된 것은 지식기반경제 담론을 통해서였다. 90년대 등장한 지식기반경제 담론은 당시의 경제적 실재를 표상하기보다는 하나의 경로였다. 이것이 유일한 실재로 제시된 맥락은 70년대 후반 시작된 한국사회 축적위기 이후 우연적인 사건들의 연속성에서 파악해야 한다. 80년대부터 구조조정 시도가 이어졌으나 노동운동 등의 영향으로 구조조정은 실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외환위기로 지식기반경제는 자본주의의 필연으로 제시됐고, 대항담론은 있었으나 대안적 경로가 제시되지 못한 소극적 비판이었다.

 

지식기반경제에 적합한 시민으로 인적자원이전에 정부주도로 가장 먼저 제시된 주체는 신지식인’(지식근로자)이었다. 물론 신지식인은 실패한 담론으로 끝났지만, 다양한 주체성을 동질적이고 일반적인 주체로 환원하는 국민을 호출하였고, 자기책임의 구현자로서 사회적 정체성과 무관하게 자기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주체성을 제시하였다. 이는 이후에 등장하는 다양한 주체성들도 모두 포섭하는 특성이다.

신지식인 담론이 실패한 이후,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은 인적자원담론이다. 인적자원 담론은 ‘인적자원개발회의’, ‘교육인적자원부에서도 볼 수 있듯 정부에서 통치의 골자로 생각하는 영역이었다. 특히 7차 교육과정과 교육개혁은 자율성과 다양성, 자유와 선택 등의 가치를 가지고 나왔는데, 이는 비단 교육의 영역만이 아닌 사회 전체를 재구조화하는 포괄적인 기획 가운데 하나였다.

지식기반경제에 대응한 통치기획으로 제시된 국가인적자원개발기본계획은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경제개발계획과 단절했다는 의미에서 각별한 기획이다. 경제개발계획에서 국민교육헌장이 개발국가와 독재국가,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산업화와 근대화의 역군으로서의 국민주체를 재현했다면, 국가인적자원개발기본계획이 재현하는 국민은 국가의 돌봄받지 않는 능력있고 경쟁력있는 국민이다. 신자유주의에서 국가는 약화되지 않고, 개인적 주체성의 정체성을 강화함으로써 더 강력하게 작동한다.

 

유연한 노동주체의 등장은 자본이 자신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경제적 조건을 고안함과 동시에 그에 대응하는 주체성을 새로 생산해야 하는 문제를 살펴야 한다. 계급구성 관점에서, 네그리의 분석에 따르면 생산의 자동화와 컴퓨터화에 따라 사회적 노동자가 등장했다. 그러나 이는 노동주체의 자기로의 주체화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다.

저자는 노동주체의 자기로의 주체화를 분석하기 위하여 전략경영담론을 분석한다.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 등장한 인재라는 노동주체는 기술적 자격이나 일반적 자격에 무관한 인성에 관한 담론이다. 테일러주의의 생산성이 노동주체의 능력을 객체화하는 관리하고 통제하는 담론이라면, 이제는 역량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전략경영담론은 비전과 인재상을 통해 노동주체를 전략적 행위자로서 기업에 종속시켰다. 노동주체는 이제 명령이 아닌 전략에 따라 역량 있는 주체로 스스로를 계발하고 향상시켜야하는 책무를 갖는 것으로 주체화된다. BSC, MBO 같은 테크놀로지도 임금지급의 수단이 아닌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가장 잘 아는주체를 만드는 데에 목적이 있다.

역량 모델링은 직무분석이 일을 객체화된 행동으로 분석하는 데에 더하여 핵심’, ‘기본으로 명명하는 역량을 분석한다. , 노동주체의 표준화되고 평균화된 일이 아니라 개별 주체의 심리활동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기계발하는 주체는 자기경영 담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존의 자기계발서가 자기수련의 지침서였다면, 성공학 이후 경영 구루들이 생산하는 텍스트들은 경영 담론과 자기계발 담론 사이를 넘나든다. 경영의 언어로 경제적 주체로서의 삶과 사적인 자아로서의 삶 사이에 거리를 없앤 것이다.

이와 같은 자기계발 담론은 문제화, 테크놀로지, 목적의 담론을 포함한다. 자기의 문제화는 자아를 분석/진단/해결 대상으로 객체화한다. 자기의 테크놀로지는 객체화된 자아의 심리, 행위방식들을 계발하기 위한 테크놀로지이며, 이 담론은 결국 자율과 책임을 갖고 역량 있고 유연한 일하는 주체로 개인을 주체화한다.

 

이 모든 과정을 다시 정리하자면, 1) 자본의 축적위기에 지식기반경제만이 유일한 해법인 것처럼 제시되었고 2) 정부 역시 교육부문에서부터 자율적이고 경쟁력 있는 인적자본으로 주체화시키고자 하였고 3) 각 기업에서 역시 노동에 대한 통제 테크놀로지가 구체적인 경영명령이 아닌, 제시된 비전에 알맞게 스스로 대처하도록 하는 유연한 노동주체로 주체화하였고, 4) 자기계발 담론은 경제적 주체와 사적 주체의 영역의 거리를 소거한 자기경영하는 ‘자기계발하는 주체로 주체화하였다.

언뜻 읽다 보면 뭔가에 전국민이 홀려 조종당해 이런 세상이 됐다는 굉장히 암울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 주체화는 동의를 통해 이뤄진다. 처음에 저자가 단지 신자유주의적 전환이라는 배경 설명만 하려고 지식기반경제담론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라, 시대적 배경이 당시에는 지식기반경제를 당면한 현실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그리고 대안을 상상해내지 못한 우리는 결국 그렇게 주체화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계보학적 분석의 결론은 사실 역사에 다른 가능성도 있었지만, 지배적인 담론적 실천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있었고, 또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안담론을 만드는 것일 테다. 새로운 유토피아적인 미래를 꿈꾸는 것, 그것은 지배적인 담론적 실천들이 우리에게 디스토피아적인 현재를 선사했듯, 역으로 유토피아적인 미래도 가능하다.

 

끝으로 큰 흐름과 일맥상통하나 정부주도의 직무역량 중심으로의 고용제도 변화를 추가적으로 분석해보면 어떨까 싶다. 박근혜 정부 때, 노동유연화 등 다양한 정책들이 있었지만, 능력주의 사회를 기치로 “NCS”라는 이름으로 공개한 산업별 국가직무능력표준은 국가 주요산업들에서 필요한 노동력을 표준화한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크다. 전문대학과 특성화 고교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교육 프로그램이 재편됐고, 정부에서도 각 기업에 이 가이드를 따라 채용을 진행할 것을 권고하고, 공공기관 채용에서도 NCS 기반 채용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하고 있다. 각 기업들도 필요역량을 포함한 직무기술서를 채용공고에 비교적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