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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법에 의한 지배에 '법리와 원칙'은 없다

by 양자역학이 좋아 2024. 12. 27.

법의 지배, 법에 의한 지배
  대중적인 법 감정과 어긋나는 판결이 나올 때마다 나오는 목소리 중 하나는 “차라리 AI가 낫겠다“인데, 서구의 법치의 지향점을 두고 볼 때 전혀 근본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알랭 쉬피오의 『숫자에 의한 협치』는 법치가 처음부터 인치를 배제하기 위하여 나온 사상이란 것을 강조한다. 고대부터 군주의 자의성을 대신하는 자리에 수(繡)치가 법치의 근본이념으로 자리잡고 있었고, 계산적 합리성의 극단적 형태가 법을 규범의 자리에서 몰아냈다. 법 규범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각각의 관계망 내에서 계약이 자리하여 또 다른 형태의 ‘인치’로 회귀했다는 것이다. 즉, 법치의 이념 내에서 계산적 합리성과 법의 규범성 사이의 균형이 깨졌고, 그 결과로서 법의 효력범위는 계약을 강제하는 데 있을 뿐, 통치는 개별 계약들이 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한편,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가 제기하는 질문은 법의 지배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의 차원에서의 문제다. 피상적인 민주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이념인 다수에 의한 지배라는 대원칙을 파괴하는가? 저자는 2016년 아웃사이더의 돌풍을 일으키고 미국 대통령이 된 트럼프가 공화당을 잠식하고 2020년 재선 실패 이후 대선불복을 한 시점으로부터 미국 민주주의의 문제를 짚는다. 이 책을 읽으려면 미국 정치에서 2016년부터 2024년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다시 바라봐야 한다.

2016년과 2024년의 트럼프
  트럼프 행정부 1기였던 2019년 초, 행정부는 국경장벽 건설에 57억 달러의 예산을 요구했으나,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은 이를 거부했고 35일 간 부분적인 셧다운이 이뤄졌다. 결국 국경장벽 건설 자금이 포함되지 않은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교착상태는 끝나는 듯 했으나, 트럼프는 예산안에 서명한 다음날 바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의회 동의 없이 국경장벽 건설에 총 61억 달러를 투입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시에라 클럽과 남부 국경지역사회연합은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트럼프의 비상사태 선포와 예산전용이 위헌적이라고 소송을 걸었다. 트럼프는 비상사태에서 군사자금전용을 허가하는 법률조항을 근거로 정당한 권한행사임을 주장했으나, 1심, 2심 모두 받아 들여지지 않아 패소했다. 연방대법원은 소송 계속 중 5-4 표결로 장벽건설을 위해 25억 달러를 투입하는 것을 허용하는 결정만 내렸다.
  소송이 진행 되는 동안 2020년 미국 대선이 열렸다. 트럼프는 대선이 열리기 전부터 선거가 조작될 것이라고 주장했고, 특히 우편투표에 대해 부정투표가 이뤄질 거라고 해왔다. 개표가 진행 중일 때부터 트럼프는 부정선거고 자신이 승리했다고 주장하고, 개표 중단하라고 트윗을 하기도 했으며, 주 정부 및 주 의회, 법무부, 부통령을 압박하여 허위의 선거인단 증명서 작성과 인정을 압박하기도 했다. 급기야 2021년 1월 6일 지지자들에게 선거 결과 뒤집기를 위한 폭력시위를 부추겨 의사당 난동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2021년 1월 20일 조 바이든은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트럼프의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종료하는 명령을 내렸고, 연방대법원에 계류 중이던 사건들은 하급 법원으로 반환되어 시에라 클럽과 남부지역사회연합이 제기한 소송은 조 바이든 행정부와 합의로 종료되었다.
  그 이후 트럼프에 대한 형사사법적 처리는 아직 종결되지 못했다. 트럼프에 대한 총 4개의 연방중죄에 대한 사건 중 특히 워싱턴 D.C. 사건은 대선불복 관련하여 사기, 공무집행방해, 시민 권리에 반하는 모의 등으로 2023년 8월 1일 기소되었다. 1심 2심에서 모두 유죄 판결이 나왔지만 연방대법원은 6:3으로 2024년 7월 1일 트럼프의 면책특권 주장에 대해 일부 받아들여 하급심으로 환송했다. 참고로, 미국 연방대법관은 종신으로, 아버지 부시가 임명한 1명, 아들 부시가 임명한 2명, 오바마가 임명한 2명, 트럼프가 임명한 3명, 바이든이 임명한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공화당에서 임명한 6명과 민주당이 임명한 3명으로 결정된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면책가부에 대하여 핵심적인 헌법적 권한 행사는 절대적 면책, 공식적 행위에 대해서는 추정적 면책이 가능하며, 비공식적 행위에 대하여는 면책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법리를 판시했다. 데통령으로서 한 행위에 대한 원칙적 면책 가능을 주장하고, 대통령으로서 한 행위인지 아닌지에 대한 증명책임을 검사에게 있다고 “새롭게” 판시한 것이다. 트럼프의 재임 중 행위가 공식적 행위인지 비공식적 행위인지는 하급심이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트럼프는 무사히 2024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될 수 있었다. 법무부는 트럼프에 대한 기소를 모두 취하하였다.
 
미국은 왜 민주적이지 않은가?
  트럼프의 대선불복과 의사당 공격선동은 미증유의 사건이었지만, 미국은 1801년 최초의 정권교체 시점에도 예비적인 진통을 겪었다. 그러나 앞으로 다시 승리할 수 있으며, 권력이양이 파멸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러한 두려움은 어느 나라나 독재로 이끈다. 공화당은 2016년에는 트럼프를 반대하는 세력처럼 보였으나, 그의 대선불복과 의사당 공격선동을 보고도 그를 잔류시켰다. 동시에 공화당은 당내에서 트럼프를 비판하는 정치인들을 모두 은퇴시키거나 당내 경선에서 패배시켰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훼손시키는 방법은 모두 ‘헌법적 강경태도’, 거시적인 차원에서 헌법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수단이 이용된다. 법의 허점을 이용하거나, 법을 남용하거나, 상대 진영에게만 법을 적용하거나, 정적을 겨냥한 새로운 법을 만들거나 하는 방법을 통해서다. 미국은 처음에는 민주당이, 최근 60여년 간은 공화당이 흑인들의 투표를 어렵게 하기 위해서 흑인의 정치참여에 대한 폭력적 수단과 법적 수단을 동원한 공격을 해왔다. 인종구성 변화에 대한 백인들의 공포를 이용한 이 전략은 굉장히 효과적이었고, 특히나 주 별로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미국 대선에서는 공화당에게 유리한 고지를 보장해주는 전략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수의 유권자만 공략하는 전략이 효과적인 선거전략으로 만드는 선거인단제도는 왜 바뀌지 못하는 걸까? 먼저, 미국의 강력한 상원제도는 인구수와 무관하게 주 별로 2명의 상원의원이 있다. 동시에 소수의 거부권(필리버스터) 제도를 유지한다. 상하원 모두 2/3의 개헌 찬성파가 있어도 어쩌면 필리버스터 때문에 통과하지 못할 수 있다. 여기까지 온다고 하여도 3/4 이상의 주 의회에서 비준이 되어야 한다. 수 차례의 시도에도 여태까지 선거인단 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그것이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의 최고 헌법해석 기관인 연방대법원의 역할도 간과할 수 없다. 미국에서 보통선거권 보장을 위한 선거법 개정이 다수의 동의로 통과될 때마다, 혹은 소수의 필리버스터를 제한하는 법을 통과시킬 때 마다, 이를 저지하는 건 언제나 연방대법원이었다. 1965년 투표권법은 차별적 투표관행이 있는 주와 지역을 연방에서 규정하고 지정된 지역에서 투표절차를 변경하고자 할 때 연방정부가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골자로 흑인의 투표권을 보장하고 제정되었다. 그리고 2006년 1965년의 투표권법을 25년 연장하는 새로운 투표권법이 상하원을 모두 통과하고 부시 대통령이 서명했음에도, 2013년 연방대법원은 5:4의 표결로 2006년의 법을 폐기했다. 2021년에도 비슷한 취지의 투표권법이 하원을 통과하였으나, 필리버스터에 막혀 법안 논의가 중단되었다.
 
덕성 없는 대표자는 공화주의 적이다
  미국은 아직까지도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고, 강력하면서도 인구수에 무관하게 주 별로 2명씩 인구비례를 고려하지 않는 상원을 운영하는 국가다. 즉, 헌정질서에 의해 소수의 의지만으로도 통치할 수 있는 국가라는 것이다. 더욱이, 그 소수가 헌정질서의 이념조차 거부한다면, 공화국의 적이 공화국의 제도로 공화국을 지배하는 상황을 목도하게 된다.
  대표자의 시민적 덕성은 대의제를 정당화하는 가장 핵심이다. 다수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는 개별의지의 총합인 전체의지가 아닌, 추상적인 차원의 일반의지의 담지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선출된 후에는 유권자의 의사와 독립하여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고, 일반 의지자의 담지자가 될 수 있도록 헌정질서가 그 조건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미국의 판결과 미국 민주주의를 다룬 책이지만, 2024년 한국의 민주주의가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2024년 12월 3일의 계엄 사태에도 불구하고 헌정질서는 가까스로 지켰지만, 시민적 덕성이 결여된 여당이 언제든지 1/3석 이상이라면 대통령이 반란을 일으켜도 형사소추의 대상은 될 수 있을지언정, 대통령 직무정지를 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12월 7일 우리는 탄핵 소추에 반대한다며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는 대표자들의 모습들을 보았다. 그리고 뒤 이은 탄핵 소추에도 불구하고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 남발과 탄핵심판 지연을 위한 헌법재판관 임명의 지연까지 민주주의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모두가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시민적 덕성을 부정하는 이들이 대표가 되었을 때 시민적 덕성을 ‘가정’하는 것만으로는 헌정질서 조차도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물론, 지금 당장 개헌은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헌법에 큰 결함이 있어서 이런 위기가 생긴 것은 더더욱 아니다. 헌정질서는 위헌적인 국가권력에 맞선 덕성 있는 시민들이 저항권을 행사하여 가까스로 지켜냈다. 더욱이 한국은 역사적 정치지형이 미국과는 상이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행태가 유사하다는 점만으로는 동일한 정치문제가 있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제도의 해킹을 어떻게 시도해왔는지 유심히 보고, 미국에서는 무엇을 동력으로 삼아 가까스로 지켜낸 민주주의를 다시 헌납했는지 보아야 할 것이다. '법리와 원칙'은 통치권력의 법에 의한 지배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 법의 지배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절차적 보완 뿐만이 아니라 그 실체적 내용이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