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adings

김영란, 『판결 너머 자유』: 우리 사회는 분열사회에서 공존사회로 이행하고 있는가

by 양자역학이 좋아 2025. 1. 4.
 
판결 너머 자유
 

 
롤스가 꿈꾸던 다원주의의 토대: 중첩적 합의와 기본적 자유들
  극단적인 대결 사회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 우리는 정의로운 다원주의 사회로 어떻게 이행할 수 있는가? 김영란 전 대법관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롤스의 『정의론』과 『정치적 자유주의』를 가져온다. 『정의론』은 선험적(transcendental)이면서도 이성적인 사회계약의 내용을 구축하기 위한 시도다. 그가 ‘무지의 베일’에서 합의될 수 정의의 내용의 원칙은 위계 없는 기본적 자유(들)의 체계를 모두가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것,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의 원칙이 되는 공정하고 균등한 기회균등과 최소 수혜자의 최대 이익이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어떻게 사회계약을 존속시키면서도 안정적인 다원주의 사회를 구축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룬다. 각각의 신념체계들은 모두 각자의 심원하고 합당한 근거가 있지만, 중첩적 합의를 구성하고 이를 구성하는 근거가 되는 공적이성을 받아들임으로써 정치적 정의관을 구성한다면, 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는 얼마나 합의된 것인가?
  책에서는 분묘기지권, 제자주재자 사건, 친생부인의 한계,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양심적 병역거부, 성전환자 성별정정,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사건, 부동산 명의신탁사건, 손자녀 입양 및 미성년자 특별한정승인 사건들을 살펴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단순 법정의견으로 결정된 다수의견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을 살펴보는 것이 아닌, 별개의견과 보충의견을 통해 어떻게 결론이 이르게 되는 지를 역추적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근거가 되는 다수의견은 단일한 신념체계에 대한 동의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수의견의 신념체계와 결과적으로 합의하지만 상이한 신념체계에서 이를 동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다수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소수의견 외에도 “상이한 신념체계로 다수의견에는 동의했으나, 논거는 다르다”는 별개의견이 있을 수 있다. 이 논의의 과정에서 결정된 다수의견은 “소수의견과 별개의견에도 불구하고 다수의견인 이유”를 밝히는 보충의견이 존재한다.
  의견들에 대한 해설 속에서 김영란 대법관이 해내는 작업은 논쟁의 재구성이다. 13명의 대법관들 각자의 의견 대립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의 있습니다’하는 소수의견도 중요하지만, 다수의견 안에서는 어떤 의견들이 불일치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의를 이뤄낸다. 우리 사회는 과연 롤스가 이야기하는 서로 상이하지만 논리적인 주장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로 이행하고 있는가? 중첩적 합의가 구성되고 있는가? 구성된 중첩적 합의 속에서 공적이성이 구성되고 있는가? 공존의 토대가 되는 자유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내비치고 있는가?
 
판결문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본다는 것
  짧지만 김영란 전 대법관의 이 책을 보면서 느끼는 건 그가 얼마나 법학을 사랑하고, 법관으로서의 삶을 사랑했는지 느끼게 된다. 단지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도 아니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분석도 아닌, 자신의 직업을 정치철학자의 눈으로 다시 성찰한다는 데에 이 책의 진정한 의의가 있다. 롤스를 읽은 독자가 있다면 비교적 이 책이 쉽게 읽힐 것이고, 잘 모르는 분이라면 사실 서론은 처음에 과감히 뛰어넘고 마지막에 읽어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전반에 다가오는 위험에 대한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적극 공감하지만, 진단이 아닌 해결책으로서 중첩적 합의와 다원주의 사회로의 이행이 가능할지는 선결문제들이 너무 많고 지금의 사회가 ‘롤스’적인 방식으로 해결 가능한 건지, 우리 사회에서 대법원의 판단이 공적이성으로서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할만큼 충분히 존중 받고 있는지 의문은 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김영란 전 대법관님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되겠다. 수험생활이 끝나면 법학을 진지하게 다시 공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