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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s

페미니즘 리부트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연구모임 사회비판과대안, 『포르노그래피, 그리고 청년이라는 문제 - 베스텐트 10호』

by 양자역학이 좋아 2024. 8. 3.
 
포르노그래피, 그리고 청년이라는 문제
이 책은 ‘포르노그래피’를 둘러싼 최신 논쟁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청년세대의 젠더 갈등’에 대한 청년 당사자의 입장에 귀를 기울인다. 특히 30대 남녀 청년 연구자 다섯 명이 대거 참여한 한국판 특집은 ‘일베’의 남성성 연구, 청년세대 담론의 비판적 재구성, 20대 페미니스트 여성 참여관찰, 젠더 갈등의 정치적 의미 고찰, ‘청년 여성 정치’를 현장에서 수행해온 활동가의 회고 등 청년 의제에 대한 청년 연구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
율리아네 레벤티슈, 케르슈틴 슈타케마이어, 수산나 파소넨, 레오니 칠히, 제니퍼 도일, 제니퍼 내시
출판
사월의책
출판일
2024.04.10

 

  인터넷은 세상을 더 연결시켰지만, 동시에 쾌락도 더 연결시키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접속하는 사이트 중에 하나는 구글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접속을 금지시키는 p***hub x****os 등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음란 사이트에 대한 규제는 비단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성적 표현에 대한 자유의 최전선에 있는 포르노그래피는 도덕의 문제에서 가장 논쟁적인 분야다. 자유를 외치면서도 성에 대한 표현을 죄악시하고 억누르는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게 하는 것이 과연 약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것인가? 이 책의 1부는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해외 담론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몇몇 사이트를 차단시키고 있고, 또 최근에는 서울시에서 성인영화 배우들 팬미팅 행사도 취소시켰던 만큼, 평소에 해온 생각들을 한 번 뒤집어서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2부의 한국판 특집이야 말로 진정 내가 이 책을 집어든 이유다. ‘청년 의제에 대한 청년의 목소리.’ 당연하게도 오늘날 청년에게 가장 큰 주제는 소위 젠더 갈등으로도 불리는 남성성의 위기.(아무도 안 알아줘도 내가 미는 단어다) 일베, 청년정치, 페미니즘 이 세 주제는 젠더 갈등이란 말로 포착하는 현상의 핵심적인 구성요소들이다. 미디어가 쓰는 젠더갈등이란 말은 마치 문제의 본질이 성차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끔 하고,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면 해결이 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지만 실제 문제의 원인에는 전혀 접근하지 못한다.

 

보통 일베들의 시대를 어찌 할 것인가

  먼저, 일베에 대해서 다룬 송민정의 일베 남성성의 변주와 구조적 한계는 일베 자체의 남성성은 루저 남성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고 복수의 남성성이 공존하며, 때로는 586과 같은 외부의 남성성과 갈등 하면서 지속적으로 변주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베의 여성혐오를 루저 남성성에서 찾을 수만은 없고 루저가 아닌 남성성을 포함하여 복수의 남성성이 존재하지만, 네 가지 원리에 의해 공존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한 논문에서 예를 드는 세대 계급을 뛰어넘는 남성연대는 남성 집단의 결속을 위한 여성의 배제, 능력주의, 엄벌주의, 냉소적 거리두기의 원리에 의해 가능한 것이라는 것이다.

  여성혐오가 일베의 가장 큰 축으로 작동하며, 적어도 감정적인 부분에서 일베에 존재하는 복수의 남성성들을 결속시킨다는 점에 있어서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그 전제가 되는 루저 남성성만으로는 일베의 남성성 수행을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다. 이념으로서 남성성의 의미에서는 일베에서 루저 남성성은 지배적이고, 다른 복수의 남성성들도 공존이 아니라 그 루저 남성성에 의해 재규정 된다.

  루저 남성성은 10여년 동안 일베에 모인 소수의 악취미에서, 2030 남성들 사이에서 이미 보편화됐다. 가장 강력한 근거는 정치인 이준석이다. 젊은 층의 공정에 대한 지지로 포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일베의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 혐오를 뒷받침 해주는 바로 그 공정이라는 정당화 기제가 능력주의였으며, 이준석을 만년 루키에서 당대표로 만들고 이준석을 따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의 캐스팅 보트가 된 이들이 바로 2030 남성들이었다. 루저 남성성은 이미 주류화되어 있고, 일베라는 공간에선 더더욱 지배적인 위치가 공고하다. 복수의 다른 남성성들도 자율성은 다소 있지만, 루저 남성성에 대하여 그 지위가 평등한 동등한 남성성이 아닌 종속적인 위치에 있다.

  그래서 저자와는 달리 일베라는 오래된 현상에 대해선 더이상 일베 내부의 공존하는 남성성 분석으로는 맞설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항상 적대자에게만 적용하는 능력주의와 공정이라는 공고한 이데올로기를 우리가 어떻게 극복해나가야할까 고민하는 것이 지금의 과제 아닐까?

 

젠더갈등의 본질은 여권 신장이 아니라 남성성의 위기다

  다음으로 최태섭은 이것은 젠더의 갈등인가? – 젠더정치에 관한 소고는 페미니즘 리부트로 불리는 2015년 이래 반성차별의 정치가 한 순간에 무력해진 원인을 성찰한다. 그가 꼽는 원인은 첫째, 모호한남성연대의 개념과 피해자로서의 정치, 둘째, 생물학적 여성만을 주체로 삼는 경직성, 셋째, 목적이 되는 전망 없는 실천이다. 사실 세 가지로 나누어 제시한 원인들을 정리하면, ‘남성 연대라는 모호한 개념에 입각해 생물학적 여성들을 피해자로 상정하여 그들만을 주체로 상정하였고, 남성과 공존하는 전망이 없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하는 반성차별의 정치가 일정부분 성과를 거뒀다는 사실을 부인할 생각은 없지만, 장기적인 동력을 잃어버리고 뜨거운 냄비처럼 너무 빠르게 식어버린 데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성찰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는 동감한다. 사회적인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 때 몇몇 논자들의물 들어오니 노 젓는다는 무책임한 태도들도 인간적으로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서페미니즘이 지금도 돈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그렇게 인터넷을 시끄럽게 했던 젠더갈등은 가히 성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 그리고 남성연대를 지키기 위한 반동적인 안티 페미니즘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페미니스트 논객들에게만 탓을 돌리기에는 기성언론 조차 혐오에서 발생하는 트래픽을 위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온라인 상에서 서로에 대한 혐오발언을 그대로 퍼뜨렸다. 반대편의 비판자들 역시 페미니스트들을 논파하며 남성들의 피해의식에 기대어 문제의 본질을 젠더 갈등으로만 호도해오지 않았나. 언젠가 본 100분 토론에서 어느 논객의 말처럼 모두가 속는 척 했던 10년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의 해법이 유일하고 올바른 해법인 "척"했고, 젊은 여성은 문제를 해결하는 실천적인 '척' 했고, 젊은 남성은 자기 문제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이성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척"했고, 진보 '남성'들은 페미니스트들과 젊은 여성들을 지지하는 "척"했으며, 정치인과 관료들은 양성평등 달성하겠다며 나서는 "척" 했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한계가 뚜렷한 걸음만을 옮겨왔던 것이다. 

  오히려 젠더 갈등이라는 현상이 보여준 것은 성차별은 물론이고 성희롱이나 추행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온 여성들이 더 이상 현저히 저항 불가능한상태로만 남지 않겠다는 의지와 함께, 남성 부양자를 모델로 하는 가족 모델이 더 이상 기본 단위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젠더갈등현상의 본질은 여권 향상이라기 보다는 재생산의 위기로 남성성의 위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렇기에 남성성의 위기를 극복하고, 남녀가 공존하는 새로운 가족 모델, 더 나아가 사회적 규범이 필요하고 이를 제시하는 것이 진정한 과제다.

  돌아 돌아서 결국 필요한 건 사랑,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바라보고 함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나가는 것, 오직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