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박형서
- 출판
- 문학동네
- 출판일
- 2018.07.11
문학은 잘 모르는 분야라 박형서의 단편소설을 모은 『낭만주의』는 비평을 먼저 읽고 나서 폈다 1. SF의 계보를 추적하면, SF는 과학적 요소가 ‘인지적 낯설게하기’를 수단으로 쓰이는 SF와 과학적 ‘인지의 확장’을 목적으로 삼는 SF로 구분된다. 전자의 경우 허구적인 과학적 구성물이 삽입된 배경 속에서 서사가 진행되는 반면, 후자의 경우 서사의 전개 자체에 과학적 사고가 개입한다. 최근 유행하는 전자와 달리 후자에 대해 주목하며 이 책에 실린 단편 「외톨이」를 그 사례로 꼽는다.
『낭만주의』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라는 생각에 암호 같지만, 사실은 제목부터 정말 투명하다. 여섯 개의 독립된 단편으로 이뤄졌지만 구성상 하나의 완결성을 추구하는 단편집이다. 「개기일식」은 작가의 위트에 정말 깔깔 웃으면서 읽은 서문이다. “쿠데타는 무슨, 술김에 확 엎은 모양이다” 2016년 여름에 발표된 단편인데, 코미디로 읽게 하는 건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처음 읽을 땐 블랙코미디 정도로 받아들였기에 다시 읽을 때가 되어서야 다시금 알아차렸다. 문학에 대해서 작가가 한 고민들을 권력기관 ‘사연청’이 존재하는 허구적 세계에 담아냈고, 앞으로 펼쳐질 단편들에 대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다음 각 장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과학적 허구에 대하여 형식적 탐구를 수행한다. 「권태」는 책 전체에서 분량도 그렇고 읽으면서 다소 지루하다는 느낌을 조금 받았다. 이 단편도 역시 2014년에 발표되었지만, 캘리포니아 대화재를 소재로 했다. 사람-인물들은 존재하지만, 의인화된 재앙적 화재가 주인공처럼 서사를 전개하고, 서사 전개의 동력은 온갖 과학적 가설과 이론들로 주인공인 화재 ‘아임’을 파악하는 데에 있다. 군데 군데 박진감 넘치는 장면도 있었고 ‘과학적 고양감’을 느낀 허구적 전개들도 있었지만, 과학이란 역시 블록버스터마저도 권태롭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시간의 입장에서」와 「키 큰 난쟁이」는 과학적 허구가 각각 서사의 배경과 주인공을 그리는데 동원된다. 「시간의 입장에서」는 멸종위기의 적색야계를 가지러 간 국제기구 과학자와, 적색야계를 가축화한 마을에서 온 현지인 선생의 동행 이야기고, 「키 큰 난쟁이」는 차별을 모르고 자란 난쟁이가 경험한 차별 이야기다. 두 이야기는 권태보다는 메시지가 좀 더 선명하게 와닿았지만 과학적 고양감은 풍경으로 그려져 SF의 두 가지 중 전자에 해당한다.
「외톨이」와 「거기 있나요」는 앞서 행한 서사의 전개라는 형식적 측면과 배경이라는 내용의 측면의 합일을 꾀한, 경이로운 단편들이다. 앞선 네 단편 소설들은 마치 이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위한 소설들이었을까? 「외톨이」는 상실감과 세상에 대한 분노를 허구적인 물리학 이론의 전개로서 표현하고, 「거기 있나요」는 과학적 사고의 본질인 주체의 인격신에 대한 끊임없는, 그리고 목숨을 걸면서도 지키는 회의를 양자컴퓨터를 이용한 진화 메커니즘 연구로 표현한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문학이 세상을 구원하는가?’란 거창한 생각을 한다. 아마도 대체로 문학보다는 과학이 세상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한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이 책은 독일 낭만주의 세대의 문제의식을 아직 해결하지도 벗어나지 못한 내게 얼마간의 구원의 길을 열어준 것 같다.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미적 경험은 그 장르나 매체적 특성에 가장 충실할 때, 그 목적도 가장 잘 달성하는 것이라 믿는다. 단편집 제목 『낭만주의』 역시 그냥 붙인 이름이 아닌, 독일 낭만주의의 자연에 대한 기계론적 분석의 거부와 직관에 대한 옹호, 자연을 정신의 ‘표현’으로 보는 관점들을 이 단편들에서 담아내려는 시도였기에 붙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헤겔을 다시 공부할 때 좀 더 작가의 성취를 분석하면서 읽어봐야겠지만, 내용과 형식 두 면에서 작가의 시도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책 선물 주고 받기는 마치 우정 테스트 같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친구들이 내게 준 선물들은 모두 그 시기 내 고민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해주곤 했다. 『낭만주의』는 꽤 많은 이야기가 통한다고 생각했던 안 지 얼마 안 된 친구에게 선물 받아 읽게 됐다. 이 책을 다 읽고는 옛날부터 하던 고민을 다시 맞닥뜨리는 기분이었다. 알고 지낸 시간보다 오래 전부터 친구였을지도 모르겠다.
- 홍미르. (2023). [2023 문학동네신인상] 평론 - SF라는 이름의 호모플라시. 문학동네, 30(3), 524-548. https://scholar.kyobobook.co.kr/article/detail/401005842324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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