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41 <더 랍스터>: 기능주의적 극단의 통치가 선사하는 대안 없는 로맨스 올 초에 영화광 친구로부터 추천을 받고, 또 다른 친구에게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다른 영화를 추천 받아서 봤다.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기괴한 설정으로 일상적인 소재임에도 쉽사리 주인공들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게 만든 상상력과 그에 따른 전개만큼은 올해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렇지만 서사 속에서 주인공과 동일시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세계관 설정이 주는 기괴함에 묻혀 서사가 주는 재미가 잘 드러나지 않는 점이 아쉬웠다. 이조차 감독의 의도는 아니더라도 예상범위 내에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디스토피아에 대한 상상력이 주는 역겨움과 아일랜드의 아름다운 도시적 정경과 자연의 풍광들만으로도 시간을 내서 보기에 충분했다. 영화의 배경은 관계에 있어 극단적인 기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다. 심지.. 2024. 6. 23. 높은 마음 “높은 마음으로 살아야지낮은 몸에 갇혀있대도평범함에 짓눌린 일상이사실은 나의 일생이라면밝은 눈으로 바라볼게어둠이 더 짙어질수록인정할 수 없는 모든 게사실은 세상의 이치라면”- 9와 숫자들, 中 대학시절 내가 가장 고민을 많이 해온 주제는 이른바 주체와 구조의 문제다.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고, 그래서 그만큼 내게는 이를 논할 때 빼먹어서는 안 될 주제들이 많다. 그래서 이따금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과 관계가 가까워질 때면 어떤 식으로든 나오기 마련이지만, 늘 충분히 설명하지 못해 아쉽다.그럼에도 제한적인 대화만 나누더라도 신기하리만치 말이 잘 통한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마치 오래된 벗을 우연히 마주친 것과 같은 기쁨을 느낀다. 다.. 2024. 5. 23. <헤어질 결심>: 윤리 없는 사랑 영화관에서 두 번, OTT 서비스로 한 번 더 봤다. 처음 두 번은 산과 바다를 중심으로 한 화면구성이나 스마트 기기 문화가 완전히 녹아든 모습을 재현해내는 영화만의 특징에 관심을 갖고 봤다. 나는 영화 볼 때 감정선이 화면구성에 녹아든 장면들을 정말 좋아하는데, 해준이 서래를 잠복수사하며 감시하는 장면을 비롯해서 아직 서로 호기심에 사찰에서 데이트를 하며 북을 사이에 둔 장면 등 구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만족스러운 장면이 많았다.둘째로 08년도 아이폰 출시 이래로 극 전개 자체에 스마트 기기가 이렇게 스며들어 사용되는 것도 너무 신기했다.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것은 스마트폰 문화다. 다소 옛날 사람인 나로서는 이런 장면이 불쾌하긴 했지만 스마트 기기가 자연스레 영화에 녹아들 수 있다는 .. 2023. 7. 21. 알랭 쉬피오, 『숫자에 의한 협치』: 수치의 객관성이라는 허상 근대성의 범주에 ‘계산적 합리성’을 넣지 않는 경우는 드물지만, 통치체제에서 계산적 합리성의 중요성은 내가 들어왔던 많은 비판이론들의 범주에서 과소평가되어 왔다.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관료제 유토피아』에서 관리 기술에 있어 계산적 합리성의 과잉이 기술혁신을 오히려 저해하는 역설을 소개하는데 그쳤다면, 알랭 쉬피오는 근대 통치성의 발전을 ‘수치’의 발전의 맥락에서 파악한다. 즉, 계산적 합리성이 ‘수에 의한 조화’라는 이념으로, 근대적 통치 수단인 법이 왕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대체하는 권력으로 자리잡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인치를 막는 법의 기능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저자의 핵심 주장은, 법에 의한 통치가 숫자에 의한 협치로 대체 되고 있다는 주장은, 법이 효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효용계산에 따라 법의.. 2022. 9. 18. 이원석, 『대한민국 자기계발 연대기』: Long Live the King! 자기계발이여 영원하라 나에게 있어 일은 절대 못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직장인이라면 전통적인 의미에서 자기계발에 힘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자산이 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능력을 인정받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왕 내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과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아 붓는 곳이 직장이기에, 그곳에서 일을 잘하기 위해 내 삶의 일부를 더 할애하는 일은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 내 또래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전통적인 의미의 기업에 종속된 자아로서의 ‘자기계발’을 싫어한다. 회사에서의 성공이 삶에서의 성공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재테크와 운동, 더 나아가면 독서 같은 우아한 취미생활을 긍정적인 의미의 자기.. 2022. 9. 14. 민태기, <판타레이>: 유체과학이 이끈 지성사, 또는 교양으로서 자연과학의 가치 대학시절부터 나는 교양의 기준에 항상 의문을 품었다. 왜 자연과학은 ‘자유로운 시민’을 위한 교양이 될 수 없을까? 의식 있는 시민이란 자고로 인문사회과학 교양을 쌓는 사람이었지 결코 물리학 서적을 탐독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치 참여의 영역과 멀어서라고 하기엔, 철학이나 언어학 등의 영역은 사실 정치와 거리가 먼 구석이 분명 있다. 이 책은 10여년 동안 내가 가져왔던 의문을 풀어주는데 성공했다. 사실 나는 애초에 이 책을 유체역학이 궁금하기도 했고, 자연과학 분야의 교양을 쌓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자연과학 교양서적’으로 읽기엔 부적절한 구석도 있다. 이 책의 부제는 ‘혁명과 낭만의 유체과학사’인데 사실 이 책의 진정한 부제목은 유체과학이 이끈 근대 지성사라고 생각한다. 근대과학의 발전을.. 2022. 3. 20. 이전 1 2 3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