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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불가해한 재앙을 대하는 자세 근대성은 자기 자신을 준거로 삼는 합리성이다. 근대인은 도덕적 정당화도 자기 자신으로부터 그 근거를 찾으며, 따라서 자신의 행동에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만 한다. 이러한 논리는 세계에 대한 이해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근대과학은 초자연적인 힘에 기대어 세계를 설명하지 않는다. 우연히 일어난 일은 없고 분명 이 계(system) 안에 필연이 존재한다. 과학이 발견한 변수들과 함수로부터 우리는 계에 관한 새로운 예측모델을 만들고, 그에 기초해서 미래를 대비한다. 그리고 그 대상이 복잡한 시스템일 때 우리는 아주 자주 변수를 놓친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 벌어지고, 일어날 일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근대인의 숙명은 언제나 무너진 인과적 설명의 모래성을 다시 쌓는 일이다.근대, 재앙, 통치 코엔 형제의 는.. 2024. 7. 28.
<블링 링>: 너무나 당혹스러운 뻔뻔함 때로는 상업적으로도 실패하고, 영화 그 자체의 재미로서도 실패하는데도 의미가 있는 영화가 있다. 오래 전에 봤던 도 사실 꽤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다른 영화 리뷰를 쓰다 짧게 남긴다. 2015년 겨울이었을까? 병역 복무 중이던 친구와 휴가를 맞춰서 나와 유명 예술 평론가인 교수님과 함께하는 영화 감상회에서 을 본 적이 있다. 소피아 코폴라가 감독하고 엠마 왓슨이 출연하는 영화로, 미국 청소년들이 할리우드 스타 집에서 ‘장난 삼아’ 각종 명품을 훔치고 SNS에 자랑하고 결국은 잡혀서 처벌받는 후일담을 담았다. 줄거리만 들어도 할리우드의 하이틴 영화적 상상력의 빈약함이 느껴지고, 왜 선생님이 이 영화를 보자고 하신 걸까 고민도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 영화는 실화다. 실화여서 문제작이다. 그 어떤 도덕적 .. 2024. 7. 28.
젠더갈등 원인은 남성성의 위기 : 천정환 (2016),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메갈리아 논쟁까지 페미니즘 봉기와 한국 남성성의 위기”, 『역사비평 2010년대 중반 이후, 2030 사이에서 웹 상에서 가장 뜨거웠던 의제는 ‘페미니즘 리부트’와 그에 대한 반동이었다. 이로 말미암은 갈등을 일부 논객들은 '페미'과 '반페미'의 문제로, 태도의 문제로 다루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이는 젠더갈등의 문제이기에 그 구조적 원인을 탐구해야 해결의 실마리는 있를 찾을 수 있다. 페미니즘 리부트는 정말로 여성만의 문제였는가? 천정환 선생님의 논문은 2010년대 중반 젠더갈등이 첨예해지기 시작한 시점에 가장 빠르게 질문을 던졌고, 또 아직까지 유효한 답과 의문을 던진다고 생각한다. 벌써 과거의 논문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천정환 선생님이 진실로 그 당시 독자에게 던졌던 질문, '당사자가 아닌 남성들의 옳은 선택은 무엇인가?’에 대해 뚜렷한 답은 구하지 못했다. 남성.. 2024. 7. 12.
에로스의 재건을 위하여 - 정강산(2024), 「자본주의 구조위기의 리비도 형세: ‘암울한 세대’ 너머의 감정사를 향하여」 고백하건대, 나는 정신분석학에 관한 개념을 잘 모른다. 제대로 된 입문서 한 권 읽은 적은 한 번도 없거니와, 사회구조의 심층에 대한 분석에 정신분석학적 개념은 자리할 곳은 없고, 크게 의미있는 분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반면, 현상으로서 사회를 뒤덮는 감정들에 대해서는 ‘사회적 평균’ 내지는 ‘전체로서 사회’의 감정구조를 진단하는 것은 의미가 있으며, 그것을 읽어내는 것이 문화분석의 영역에서 정신분석학이 빛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문화/과학에 실린 정강산의 「자본주의구조위기의 리비도 형세: ‘암울한 세대’ 너머의 감정사를 향하여」는, 그런 의미에서 ‘청년’으로 호명되는 집단이 드러내는 징후들에 대한 가장 탁월한 분석이며 동시에 현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위기가 이토록.. 2024. 7. 3.
<킬링 디어>: 복수극의 이면, 사적 제재의 잔혹성 복수극에서 느끼는 쾌감 뒤의 사법제도 불신복수극의 묘미는 통쾌함에 있을지도 모른다. 억울하게 피해를 입었지만, 사법제도는 피해자 혹은 그 가족들의 억울함을 구제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가해자가 법의 비호를 받고 피해자는 비참해진다. 결국 피해자는 그 응징을 법 대신 직접 해낸다. 이에 대한 가해자의 뉘우침이나 공포 또는 후회는 주로 인과응보를 피하려는 발악으로만 묘사된다. 그러나 좋은 말로 해야 복수극이지, 근대적 의미에서는 엄밀히 말해 사적 제재다.사법권력이 지배의 일축을 맡는 근대 사회에서 폭력은 국가가 독점한다. 국가가 행하는 폭력도 적법하지 않으면 위법하고, 사인의 폭력은 당연 불법이다. 그럼에도 사적 제재의 복수극에서 오는 쾌감은 아마 법 감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법제도의 무능에서 오는 쾌감이다... 2024. 6. 30.
<존 오브 인터레스트>: 너무나 강렬한 계몽적 성취 110만명. 자극의 홍수 속에 사는 시대에, 숫자로 들어서는 아우슈비츠에서의 학살의 잔혹성이든, 왜 우리가 이 사건을 잊지 말아야 하는지 체감하기 어렵다. 그러나 는 이 둘을 감각하게 해주는 너무나 강력한 계몽적 성취를 이뤄냈다.단 수십 초를 위한 105분 카메라는 시종일관 루돌프 회스 중령과 그 가족들을 조금 먼 거리에서 비춘다. 온실도 가꾸고 물놀이도 하면서 평화롭게 전원생활을 하는 듯 하지만, 그들의 집은 수용소 담벼락 바로 옆에 있다. 회스 중령은 아우슈비츠 소장이고 아내는 이 생활을 정말 만족해하며 친정어머니를 초대해 자랑한다. 회스 중령 가족에게 수용소에서의 잔혹한 폭력은 일상이기에 이 가족의 평온함은 역겹다. 수용소에 끌려온 유대인들에서 보석과 옷가지를 빼앗은 일은 부인들 모임에서 시시껄렁한.. 2024. 6. 27.